스포츠 정책 개선 및 시설의 기반조성

스포츠 정책 개선 및 시설의 기반조성

해방공간 시기 한반도는 일본의 점령이 막을 내리고 미국과 소련에 의한 새로운 점령이 시작되었다.

광복과 동시에 남한에는 미군이 진주해 군정을 실시하였고 조선 총독부를 대신하여

미군정청이 들어와 서양의 정치제도·사상·문화를 도입했고 사회 전반에 걸쳐 그 영향력은 지대하였다.

그러나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기 이전에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의 활동 등

한국은 이미 스스로 민주적인 새 질서를 만들고 민족성을 회복하고 국가 재건을 위해

각 방면에서 노력하였다.

스포츠계에서도 조선체육회를 중심으로 스포츠 재건을 위해 자주적이며

적극적으로 미군정의 미진한 체육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시정을 요구했다.

위정당국은 세계 열국의 체육국책에 비추어 강력한 체육국책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현 미군정 행정 기구는 겨우 문교부 교회국 내에 체육과(體育課)라는 명목으로
담당자 一명, 계원 一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미군정 기구개혁에 있어서
체육행정을 위하여 영단적인 개혁이 있길 요망한다(경향신문, 1947. 3. 26).

이처럼 조선체육회는 언론기관까지 이용하여 한국스포츠 재건을 위해 시급한 정책적 토대 마련에

주체적이며 적극적 자세로 대처하며 한국 스포츠 재건의 중심기구로서 면모를 보여 주었다.

한편 조선체육회는 스포츠 재건을 위한 노력으로 정책뿐만 아니라 열악한 체육시설의 정비를 추진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경기장인 경성운동장은 일제에 의해 1925년 10월 15일 운동장 시설의 부족과

동궁(東宮)의 결혼기념 사업의 하나로 건설되어 광복 후 서울운동장으로 개칭하여

체육행사 및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현장의 중심적 역할을 이어왔다.

그러나 규모가 빈약하고 점수판, 조명시설 등이 없을 정도로 시설이 열악하여 각종 경기대회를

개최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조선체육회는 서울운동장 개·보수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축간담회를 가졌다.

조선체육회에서는 지난十六일 서울운동장식당에서산하 二十여 단체대표와관민각계관계자다수를 초청하여
서울운동장확장 개수에관하여 간담회를 개최하여 六천만원 예산으로운동장수리할건에 관하여
장시간 토의한바 있었는데 이개수공사를 추진시키기위하여 개축기성회(改築期成會)를 조직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오는 五월부터는 만반준비를 마치고 자금조달등 촉진 운동을 시작하리라 한다.
선출된준비위원은 조선체육회 시청후생국(市廳厚生局), 군정청체육과(軍政廳體育課),
서울시참사회(市參事會), 보건후생부(保健厚生部) 토건협회(土建協會)
각一명 도합七명이라한다(경향신문, 1947. 4. 18).

위의 신문기사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조선체육회 주최로 산하단체 및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서울운동장 개축간담회를 갖고 개축기성회를 조직, 준비위원 7명을 선출하였다.

또한 이 간담회에서는 경비 6천만원의 예산으로 1947년 5월경부터 자금조달 등

촉진 운동을 시작할 것을 합의했다.

이외에도 조선체육회는 산하단체주최 경기대회 수입 중 일부를 서울시에 체육시설비 명목으로 기부하는 등

스포츠 시설의 기반을 형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실제로 서울운동장은 1959년 야구장의 개·보수, 1962년 재 보수공사 진행,

1966년 대대적인 확장공사 이루어졌으나 조선체육회가 스포츠 발전에 기반이 되는

스포츠 시설의 개선을 추진한 것은 한국 스포츠 재건 사업의 일환으로 이후

서울운동장 개보수 및 확장 사업 추진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된다.

참조문헌 : 파워볼사이트https://wastecapne.org/

Author Image
admin

댓글 남기기